(홍콩=데일리홍콩) 김한국 기자 = 홍콩에서 천안문(天安門) 민주화운동 추모 활동을 주도해 온 시민단체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香港市民支援愛國民主運動聯合會, 이하 지련회·支聯會)의 전 지도부 추행동(鄒幸彤)과 이탁인(李卓人)이 국가전복 선동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홍콩 고등법원은 2026년 8월 21일 지련회와 이탁인, 추행동에 대해 홍콩 국가보안법상 ‘국가전복 선동’ 혐의가 성립한다고 판결했다. 지련회의 또 다른 전 지도자인 하준인(何俊仁)은 앞서 유죄를 인정한 바 있다.
이번 판결의 핵심 쟁점은 지련회가 오랫동안 내세워 온 ‘일당독재 종식(結束一黨專政)’이라는 정치적 구호를 홍콩 국가보안법상 국가전복을 선동한 행위로 볼 수 있는지였다.
법원 “일당독재 종식은 中 공산당 지도 종식 의미”
3명의 국가보안법 지정 판사 이운등(李運騰), 진중형(陳仲衡), 여완희(黎婉姫)는 판결에서 ‘일당독재 종식’이 단순히 중국의 정치제도에 대한 개혁이나 비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지도 지위를 끝내려는 의미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중국 헌법 서문과 제1조를 근거로 사회주의 제도가 중국의 근본제도이며, 중국공산당의 지도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핵심적 특징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현행 중국 헌법 체계에서 중국공산당의 집권 지위를 전복하거나 훼손하는 것은 헌법이 확립한 중국의 ‘근본제도’를 전복·훼손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법원은 중국 헌법상 중국공산당이 집권당으로서 지도적 지위를 보장받고 있으며, 중국의 다른 정당들은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애국통일전선에 참여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현행 헌법 아래에서는 서구식 정당교체가 가능한 정치체제를 전제로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법원의 해석에 따라 ‘일당독재 종식’이라는 구호는 단순한 정권 비판을 넘어 중국공산당의 헌법상 지도 지위를 끝내려는 요구로 판단됐다.
“폭력 없었어도 사람들의 신뢰 훼손·행동 유도 가능”
이번 판결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은 국가전복에 필요한 ‘불법 수단’에 대한 법원의 해석이다.
중국 국가안전법 제22조는 무력이나 무력 사용 위협 또는 기타 불법 수단을 통해 중국 헌법이 확립한 근본제도를 전복·훼손하는 행위를 국가전복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제23조는 이러한 국가전복 행위를 다른 사람에게 선동·방조·교사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중대한 경우 형량은 5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이다.
법원은 지련회 지도부가 폭력이나 폭력 위협을 사용하거나 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판결은 제도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떨어뜨리거나 적대감을 조성하고 분열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근본제도를 훼손하는 것도 ‘기타 불법 수단’에 포함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탁인과 추행동, 하준인이 중국공산당에 대한 적대감을 조성하고 대중의 공산당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는 것을 통해 ‘일당독재 종식’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 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들이 구체적인 폭력 행동이나 실행 일정 등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도 인정했지만,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에도 해당 구호를 반복적으로 선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를 행동으로 옮기도록 독려한 것으로 판단했다.
결국 법원은 이들이 지련회 지지자들이 향후 불법적인 방식으로 ‘일당독재 종식’을 추진할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봤다.
추행동·이탁인 “정치적 주장”이라는 변론 받아들여지지 않아
추행동은 재판 과정에서 ‘일당독재 종식’이 중국공산당의 지도 지위를 직접적으로 끝내자는 의미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제한과 법치주의를 회복하고 민주적인 정치체제로 나아가자는 정치적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추행동은 중국 헌법 자체가 홍콩에서 중국 본토와 동일한 방식으로 직접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지련회가 중국 헌법과 정치제도를 비판할 권리가 있다는 취지의 변론을 펼쳤다.
이탁인 측 역시 ‘일당독재 종식’ 요구가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한 것이 아니며, 지련회가 폭력이나 불법 수단을 요구한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법원은 두 사람의 관련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이탁인과 추행동이 해당 구호가 중국공산당의 지도 지위를 끝내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에도 이를 계속 주장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또한 두 사람이 중국공산당과 중앙정부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1989년 천안문 사건과 2019년 홍콩 반정부 시위를 의도적으로 연결해 대중의 적대감을 키우고 중국공산당에 대한 신뢰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지련회 지도부 개인의 행동, 단체의 행위로도 인정
이번 판결에서는 지련회와 개인 피고인 사이의 책임 관계도 중요한 판단 대상이었다.
법원은 이탁인과 하준인, 추행동을 지련회의 ‘주도적 의사(directing mind and will)’로 판단하고, 이들의 범죄 의도와 행위를 지련회의 의도와 행위로 귀속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개인 지도부의 발언과 활동뿐 아니라 이를 통해 지련회 자체가 국가전복 선동에 관여한 것으로 인정됐다.
지련회는 1989년 천안문 민주화운동 이후 결성돼 홍콩에서 매년 6월 4일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집회를 개최해 왔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지도부가 체포·기소됐으며, 지련회는 2021년 해산했다.
형량은 8월 28일 심리 예정
이탁인과 추행동에 대한 형량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홍콩 고등법원은 오는 8월 28일 오전 양형을 위한 변론을 진행할 예정이다. 국가안전법 제23조에 따르면 국가전복 선동죄는 범죄의 성격이 중대한 경우 5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으며, 경미한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등이 가능하다.
이탁인과 추행동은 2021년 체포된 이후 장기간 구금 상태에 있으며, 두 사람은 이번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해 왔다. 지련회의 전 주석이었던 하준인은 올해 재판 시작 전 혐의를 인정했다.
한편 홍콩 정부는 판결 직후 지련회가 장기간 홍콩 사회에 중국공산당과 중앙정부에 대한 증오를 심어 국가전복을 선동했다고 주장하며 법원의 유죄 판결을 환영했다.
반면 대만 행정원 대륙위원회는 판결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지련회가 수십 년간 평화적인 방식으로 6·4 사건을 기념하고 민주와 자유를 추구해 왔다며 피고인들의 석방을 촉구했다.
이번 판결은 홍콩 국가보안법이 정치적 구호와 공개적인 시민사회 활동을 국가전복 선동 범죄로 판단하는 범위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주요 사례가 될 전망이다. 다만 현재 피고인들에 대한 형량과 향후 항소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참고: High Court convicts Tiananmen vigil group of inciting sub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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