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데일리홍콩) 김한국 기자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반도체 거인들이 데이터 1비트를 저장하기 위해 수십만 개의 전자를 집어넣을 때, 단 ‘1개의 전자’만으로 데이터를 저장하고 감지하는 꿈의 기술이 현실로 다가왔다.

중국 푸단대학교(Fudan University) 저우펑(Zhou Peng)·류춘센(Chunsen Liu) 교수 연구진은 상온(27°C) 환경에서 전자를 단 1개 단위로 제어하고 읽어낼 수 있는 ‘상온 비휘발성 단전자 메모리(Single-Electron Memory)’ 개발에 성공했다고 세계적인 권위의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를 통해 발표했다.

그래핀이 만든 양자 트랩… 20만 개 전자를 ‘1개’로

현재 최첨단 DRAM이나 NAND 플래시 메모리는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 셀 하나당 약 20만 개의 전자를 채우고 비우는 방식을 쓴다. 전자의 누설이나 미세한 전기적 간섭(노이즈)에 데이터가 손실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다.

그러나 푸단대 연구진은 탄소 원자가 벌집 모양으로 연결된 꿈의 신소재 그래핀(Graphene)을 메모리 하단의 채널(전류가 흐르는 길)로 채택해 이 판도를 완전히 뒤집었다.

  • 원자층 두께의 초감도 센서: 두께가 1nm 미만인 단층 그래핀 채널을 적용하자, 단 1개의 전자가 갇혔을 때 발생하는 미세한 전기장만으로도 전류의 흐름이 완전히 통제됐다.
  • 상온서 0.5V 신호 구현: 극저온(-200°C 이하)에서만 짧게 작동하던 기존 단전자 소자의 한계를 넘어, 상온에서도 종전 대비 10배 이상 선명한 0.5V의 계단식 신호(Quantized Signal)를 5,000초 이상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상온 단전자 메모리 기술의 직관적 시각화

연구진은 이 소자에 ‘귀일(Guiyi, 歸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든 위대한 진리는 하나로 귀결된다”는 의미처럼, 데이터 저장 속도·이론적 한계의 용량·극초저전력을 하나의 소자에 구현해 냈다는 뜻이다.

이번 기술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는 스마트폰이나 로봇 등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 분야가 될 전망이다.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모바일 기기에서 구동할 때 발생하는 가장 큰 병목은 거대한 메모리 전력 소모다. 단전자 메모리가 상용화되면 스마트폰 내부 메모리가 소비하는 전력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어, 배터리 소모나 발열 없이 챗GPT나 제미나이급 AI를 대화의 흐름(Context) 손실 없이 24시간 상시 구동할 수 있게 된다.

저우 교수는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하반기 연구원 창업을 통해 법인을 설립하고, 3~5년 내 상용화에 나설 것”이라며 기존 메모리 시장의 판도를 흔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참고: China’s new chip stores data with a single electron, breaking AI memory bottleneck)

실리콘의 벽 넘는 중국의 대안 노선

이번 연구 결과는 최근 중국 반도체·AI 생태계의 거센 진격과 맞물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중국 최대 DRAM 기업 창신메모리(CXMT)가 상하이 증시 상장(IPO)을 통해 86억 달러(약 12조~14조 원)의 대규모 실탄을 확보하고, 문샷AI의 ‘키미 K3(Kimi K3)’가 글로벌 AI 탑티어 모델로 부상한 상황에서 나온 기초과학의 성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첨단 노광장비(EUV) 수출 규제로 미세 공정 경쟁에서 불리해진 중국이, 단순히 “회로를 더 얇게 깎고 높이 쌓는(NAND 수직 적층)” 기존의 미세화 방식 대신 “셀 하나가 다루는 전자의 물리적 한계를 최저치로 낮추는” 전혀 다른 기술 패러다임으로 우회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단전자 메모리가 당장 내일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공장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극미세 수율 확보와 대량 양산이라는 거대한 ‘제조의 벽’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도체 기술의 패러다임이 ‘하드웨어 미세화’에서 ‘양자 상태 제어 및 소프트웨어 최적화(구글 터보퀀트 등)’로 빠르게 다변화되고 있음은 명백하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기존의 ‘메모리 제조 1위’라는 성공 방정식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소재와 소자 구조 자체를 바꾸는 차세대 물리 패러다임 전환에 더 과감한 국가적 R&D와 투자를 집행해야 할 시점이다.

(참고: 구글 ‘터보퀀트’ 공개, 메모리 6분의 1로 줄여도 AI 성능은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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