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데일리홍콩) 김한국 기자 = 홍콩 사상 최악의 아파트 화재로 기록된 타이포(大埔) 왕푹코트(Wang Fuk Court) 화재 이후, 시민들 사이에서는 사건의 원인을 둘러싸고 여러 추측이 이어져 왔다. 특히 홍콩 건설 현장에서 흔히 사용되는 대나무 비계가 불길을 키운 ‘주범’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퍼졌다. 그러나 수사와 전문가 분석이 본격화되며, 이번 참사의 원인은 대나무 비계 자체가 아니라 부적합한 자재 사용과 부실한 안전 관리 전반에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사건 발생 초기 공개된 영상에서 불길이 비계 외피를 타고 순식간에 확산되는 장면이 포착되면서, 대나무가 화재를 키운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그러나 SCMP 등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국의 1차 조사 결과 각 층 승강기 창문을 감싸고 있던 고인화성 스티로폼(foam material) 이 열에 녹으며 불씨를 흡수해 실내로 불을 빨아들이듯 확산시킨 것이 밝혀졌다. 또한 외벽을 감싸던 녹색 보호망과 시트(netting & sheeting) 역시 방염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불량 자재로 확인됐다.

이 같은 조사 결과에 힘을 실어준 이는 홍콩기상청 전 국장 남초영(林超英, Lam Chiu-ying)이다. 그는 “대나무는 쉽게 타지 않는다. 문제는 왜 보호를 위해 설치한 안전망이 오히려 사람들의 집을 불태우는 흉기가 되었는가”라며 정부가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 나아가 “재개발 및 수리 사업이 거대 산업이 된 이후, 시민들은 수년간 ‘전면 밀봉 공사’ 속에서 인권에 가까운 불편을 강요받아 왔다”며 “이번 참사는 부실 시공과 허술한 감리가 만든 사람의 문제이자 시스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번 비극은 단순한 안전 사고를 넘어 부패 의혹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홍콩 ICAC(염정공서)는 수사의 일환으로 건축 컨설턴트사 Will Power Architects의 이사 2명을 체포한 데 이어, 관련 업체 직원과 하청업체 관계자 등 총 8명을 추가로 구속했다. 이들은 왕푹코트 3억3천만 홍콩달러 규모의 보수 공사 과정에서 비표준 자재 사용, 안전망 규격 미준수, 창문 스티로폼 봉인 등의 전반적 관리 부실 혐의를 받고 있다.

시민들이 믿어온 “대나무 비계 때문”이라는 단순한 설명 뒤에, 더 조직적인 부패 구조와 관리 부실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정부는 이번 화재 이후 대나무 비계를 전면 금지하고 금속 비계로 전환하는 방안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업계와 전문가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건설업계 노조 대표 주사걸(周思傑, Chau Sze-kit)은 “대나무냐 철골이냐는 핵심이 아니다”라며, “왜 8개 블록 전체가 동시에 공사에 들어갔는지, 위험성 평가를 누가 어떻게 했는지, 안전망과 창문 봉인을 왜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그는 금속 비계 역시 고열에선 구조적 손상을 입어 더 위험할 수 있다며, ‘비계 전환’이 만능 해법이 아니라고 경고했다.

(참고: Government eyes metal scaffolds, but expert points to flammable netting)

한편, 현장에서는 십대 학생이 “교체돼야 할 것은 대나무가 아니라 시스템”이라는 손팻말을 들고 조문하는 모습이 포착되며 시민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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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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