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데일리홍콩) 김한국 기자 = 홍콩중문대학교(CUHK) 의과대학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인체 골격근의 ‘노화 세포 지도’를 구축하고, 기존 항바이러스제 마라비록(Maraviroc)이 노화성 근감소증(사코페니아)을 되돌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2025)에 발표했다. 이번 성과는 “노화도 질병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오래된 논쟁에 새로운 단서를 던진다.
근육 노화, 어떻게 진행되나
연구팀은 젊은 성인(19~27세)과 노년층(60~77세) 남성의 근육 조직에서 약 5만 개 이상의 세포핵을 분리했다. 분리한 세포핵은 첨단 단일세포 핵 다중오믹스 기술과 독자적인 ‘노화 점수화 알고리즘(USS)’을 통해 노화가 세포 단위에서 어떻게 확산되는지를 정밀하게 추적했다.
정밀 추적 결과, 노화된 근육 줄기세포(MuSC)는 염증 신호 단백질(CCL3, CCL4, CCL5 등)을 과도하게 분비하며, 이들이 결합하는 수용체 CCR5를 통해 주변 세포로 ‘노화 신호’를 확산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이 만성 염증, 섬유화, 재생능력 저하를 일으켜 사코페니아를 가속화하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HIV 치료제가 노화 근육을 되살리다
연구팀은 염증 신호 단백질이 결합하는 수용체 CCR5를 차단하는 소분자 항바이러스제 마라비록(Maraviroc) 에 주목했다. 이 약물은 원래 HIV 치료제로 개발된 것으로, 고령 생쥐에 고용량을 3개월 투여한 결과 놀라운 변화가 관찰됐다.
- 근육 섬유 단면적이 커지고 구조가 젊은 개체와 유사하게 회복됨
- 악력과 달리기 지구력 등 근력 지표가 유의미하게 향상됨
- 염증 침윤은 50% 감소, 세포 노화 지표 역시 뚜렷하게 줄어듦
즉, 마라비록이 세포 간 노화 신호 전달을 차단해 근육 노화를 ‘되돌린’ 것이다.
‘노화 스위치’ 단백질 발견
연구팀은 세포핵에서 ATF3와 JUNB라는 전사인자가 노화 세포의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특히 JUNB는 노화된 근육 줄기세포에서 13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향후 맞춤형 항노화 약물 개발의 핵심 표적으로 주목된다.
사코페니아, ‘숨은 질병’에서 치료 대상으로
사코페니아는 단순한 근육량 감소가 아니라 근력과 기능이 떨어져 낙상, 골절, 심하면 사망 위험까지 높이는 심각한 질환이다. 전 세계 60세 이상 인구의 약 10%가, 홍콩에서는 65세 이상 노인의 7명 중 1명, 80세 이상에서는 절반이 이 질환을 앓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현재까지 약물 치료제는 없어 운동·영양 보충 등 비약물적 접근에만 의존해왔다. 연구팀은 이번 성과가 “노화성 질환을 적극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패러다임 전환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노화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되돌린다”
CUHK 정형외과 마이클 옹 박사는 “사람은 30대 이후부터 서서히 근육을 잃기 시작하는데, 사코페니아는 증상이 뚜렷하지 않아 조기 진단이 어렵다”며 “이번 연구는 약물 치료로 근육 노화를 되돌릴 수 있음을 보여준 획기적 발견”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홍콩 정부 혁신기술위원회(InnoHK), 연구보조위원회(RGC), 중국 국가 연구 프로그램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연구팀은 앞으로 인체 임상시험으로 확대해, 사코페니아는 물론 골관절염과 관련된 근육 노화 치료제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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